2021년 교구장 사목교서
코로나 시기 하느님 대면하기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평안들 하시냐고 인사드리기가 민망할 정도로 우리 모두 코로나 때문에 많이 힘이 듭니다.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이 감염사태를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고 치료 방안과 백신(vaccine) 개발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생각보다 더디고 명료한 답이 아직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 교구 내 모든 본당들도 방역수칙에 따라 모임을 자제하고 마스크 쓰기, 손 씻기, 거리두기를 하며 조심스럽게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만남과 대면이 어려워지면서, 늘 활발했던 교회생활이 마치 지난날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쩌면 이렇게 사그라들 것 같은 불안감마저 듭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사태는 이처럼 교회의 정체성마저 흔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흔들리고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풍랑을 만난 제자들이 배 안에서 요동치며 주님께 부르짖었던 그 혼란이 지금 우리의 혼란이 되어 먼지 덮인 성경책을 뚫고 나와 우리 가슴 한복판에 명징하게 다가옵니다.
코로나 덕분에 격리와 비대면의 시간을 보내며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결코 빼앗겨서는 안 되는 내면성(內面性)을 되찾고 하느님 앞에 서 있는 내적인간(內的人間 homo interior)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우리를 하느님 앞에 서 있게 합니다. 코로나가 꼭꼭 감추고 숨겨두었던 우리의 속 모습을 똑바로 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코로나로 인해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상황을 통해 우리 내면에 켜켜이 쌓여 있는 부끄러운 마음의 빨래들이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로 깨끗이 씻겨지길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사람은 닮아가는 존재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닮아가고 제자는 스승을 닮아갑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면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우 역설적이게도, 아주 싫고 매우 몹쓸 것이 다가오면 그것을 거부하고 싸우고 대결하는 가운데 자기도 몰래 그 몹쓸 것, 그 싫은 것을 닮아가게 됩니다. 영화 벤허(Ben-Hur)의 주인공 유다가 억울한 고초를 당하고 친구이자 원수인 멧살라를 응징하려 했을 때 약혼자 에스터가 이런 말을 합니다. “그토록 선하던 당신 얼굴에서 멧살라의 모습이 보여 두렵습니다.”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는 이렇게 간다는 식의 일대일대응은 결국 꼭같은 사람이 되게 합니다. 코로나와 맞서 싸우느라 되받고 치는 방법만을 강구하다 보면 결국 우리는 코로나 같은 인간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러니까 대응하되 넘어서야 합니다. 넘어서서 하느님과 진정한 대결을 벌여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늘그막에 얻은 아들 이사악을 바쳐야 하는 현실 앞에서 그랬듯이, 야곱이 죽음을 앞두고 외나무다리에서 대결을 벌였듯이, 예수께서 겟세마니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아버지께 기도하시며 그랬듯이 인간은 하느님과 정면승부를 겨루면서 다른 것이 아닌 하느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무한하신 분과 겨루면서 비로소 유한함을 넘어서게 되고, 거룩한 분을 대면하면서 속된 모습을 벗어나게 되고, 자비로우신 분께 간구하면서 죄스런 현실을 탈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림절과 함께 시작되는 2021년 새해는 첫 사제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님, 두 번째 사제 토마스 최양업 신부님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천주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문중에서도 동네에서도 내몰리고, 옥고와 고문과 죽음의 길을 걸었던 순교자들을 기억하면서 특별히 첫 두 분 신부님의 시리고 시렸던 짧은 생애를 되새겨 봅니다. 두 분 모두 열다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사제가 되기 위해 마카오로 공부를 하러 떠났습니다. 먼저 사제가 되신 김대건 신부님은 13개월이라는 짧은 사제 생활 동안 박해 중에 있는 신자들을 다독이고 전교하며 새로운 선교사들이 들어올 길을 개척하시다가 붙잡히셔서 옥고를 겪으시다가 순교하셨습니다.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에 피의 꽃이 되어 돌아가신 것입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김대건 신부님보다 4년 정도 뒤에 사제품을 받으시고 1849년 12월에 압록강을 넘어 13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고국에 오자마자 신부님은 잠시도 쉬지 못한 채 교우촌을 방문하며 사목활동을 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1년에 7,000리 길을 걸으며 교우촌을 방문하여 성사를 집전하시고, 우리말 교리서와 기도서를 펴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목하시던 신부님께서는 사목생활 11년 5개월 마흔 살에 과로와 장티푸스로 쓰러지셔서 돌아가셨습니다.
무엇이 이분들로 하여금 이처럼 열정적으로, 목숨까지 내어놓으며 살게 했던 것입니까? 하느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하느님의 말씀으로 올바른 세상, 사람이 귀한 대접을 받는 새로운 세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목숨까지 바치는 초개와 같은 삶을 사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두 분 신부님을 비롯한 초기 우리 신앙 선조들은 내몰리면 내몰릴수록 자신들을 내모는 이들과 맞서 싸우기보다 더 깊이 자신의 내면을 파고들었습니다. 그 내면에 자리잡은 하느님의 말씀과 진리에 대한 갈구로 말씀을 읽고 또 읽고, 적고 또 적으며 하느님을 대면하였습니다. 그렇게 내면 깊숙이 들어가 하느님을 만남으로써 그들은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 천주교회가 시작된 후 얼마 되지 않아 주일 복음에 따른 묵상과 기도문을 제시한 「성경광익(聖經廣益)」과 전례력에 따라 축일과 성인공경에 관한 말씀과 묵상자료가 담긴 「성년광익(聖年廣益)」이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이 두 책을 바탕으로 초대 신자들은 피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지금 여러 가지 시련에 내몰려 있습니다.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근원적인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두 분 신부님과 우리 신앙 선조들의 신앙 여정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안드레아 김대건 · 토마스 최양업 신부님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희년을 지내는 이때에 무엇보다도 그분들의 뒤를 잇고 있는 우리 한국 교회 사제들의 내면에 두 신부님의 처절하고도 열정적인 삶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신자들이 우리 사제들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위로를 얻고, 다시 희망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2코린 4,16)
2021을 준비하는 대림절에
교구장 배기현 콘스탄틴 주교